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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대신동 삼익 아파트 & 꽃마을 벚꽃 거리 (2015년 4월 5일)

별키드 2015. 4. 5. 10:00

 

*날짜 : 2015년 4월 5일

 

*장소 : 부산 대신동 삼익 아파트 & 꽃마을 벚꽃 거리

  

*동반자 : 너울님

 

*대신동 유래

: 부산 대신동은 옛날에는 닥밭골 혹은 고분도리라 불렀습니다.

닥밭골은 닥나무가 많이 나는 골을 뜻하고, 고분도리란 고리짝이나 들판을 의미하는데, 고리가 달린 상자 같은 것들을

이 곳에서 만들어 팔았던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이러한 대신동 지명의 유래에서 과거 대신동에는 부곡이 존재했었다고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부곡이란 신라시대 때부터 나뉘어진 군현제 아래의 행정구역인데, 고려시대 때는 고려에 저항한 사람들을 모아서

각종 노역에 동원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때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즉, 옛날옛날 대신동에 살았던 사람들은 신라시대 때 고려에 저항한 사람들이 조상이란 의미도 된답니다.

왜관이 생기기 이전에 부산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로 왜구들의 침략 때문이란 것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토성동의 유래가 되는 토성이 신라시대 때 주로 건축했던 반달 모양이라는 점을 상기해볼 때, 현재의 토성동은

방어진지로, 대신동은 주거지역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대신동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시기는 일제시대 때인, 1914년으로 추정합니다.

 보수천의 호안공사(물가의 침식을 막기위한 공사)가 끝나고 일본인들이 대신동으로 많이 거주하게 되었고 새로운 시가지

를 형성했는데, 이 시가지 이름을 조선사람들은 한새벌이라 불렀습니다.

 

대신동의 유래는 한새벌이란 명칭에서 나옵니다. 우리나라 말로 '한'은 크다는 뜻이며, 새는 '새롭다'는 의미,

벌은 '넓은 땅'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새벌을 한자로 풀어서 써보면 대신동(大新洞)이 된답니다.

 

한새벌 이전에 대신동은 행정구역상 부민포, 대치리에 속해있었는데, 보수동과 부평동의 땅만으로 부족했었던 일본인들이

대신동 지역으로 몰려와서 새로운 시가지를 형성했습니다. 이 새로운 시가지에는 대신리(大新里)라는 새로운 지명이

붙혀졌습니다.

 

그러다가, 일제시대 때 대신정(大新町)으로 바뀌었고 인구가 더욱 늘어남에 따라 1926년 동대신정과 서대신정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20~30년만에 부민포, 대치리에 속했던 대신동이 정(町)이란 명칭을 얻고 또 다시 2개로 분할된

것을 보면 일제시대 때, 대신동의 인구가 얼마나 폭발적으로 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896년 9월 일본 수비대가 부산에 설치되었고, 1909년 이 자리에 부산 감옥소가 들어섰습니다.

그러다가, 1923년 부산 감옥소는 부산 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62년 부산 교도소로 다시 한번 더 명칭이 변했습니다.

 

1973년 부산교도소가 북구 주례동으로 옮겨가면서 부산 구치소로 다시 변경됩니다. 마지막으로 1976년 현재의 삼익아파트

가 들어오게 되었고 부산 구치소의 흔적은 사라졌습니다

 

구덕운동장 뒷편으로 올라가면 구덕고개가 있는데, 옛날에는 이 고개가 부산에서 구포, 양산, 밀양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 고개에는 나그네를 상대로 하는 조그마한 주막집 몇 채가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몰려와서 집단으로 마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 곳 피난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꽃을 내다 팔았는데 국화나 카네이션 등을 재배해서 현재의

부평시장, 국제시장까지 가서 팔았습니다. 꽃이 부족할 때는 양산이나 밀양에서 꽃을 떼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유래에서 이 마을의 이름은 꽃마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구덕터널, 대티터널, 영주터널이 생겨서 교통로로서 꽃마을의 의미는 많이 줄었고 지금은 꽃재배, 꽃가공과

더불의 부산 시민의 좋은 등산로가 되면서 동시에 오리, 염소, 닭고기등을 팔면서 주민들은 생계를 유지한답니다.

 부산 남쪽 지역에서 도심속의 시골 마을 같은 느낌이 물씬 들어서 여유를 느끼고 싶은 분들이 도심과 가까운 이곳을 종종

찾습니다.

 

부산 대신동에는 여러 마을이 있었습니다. 닥밭골 마을은 확실치 않지만 삼익아파트 부근으로 추정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을에 닥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고분도리 마을은 현재 서부경찰서 뒤편쪽에 있었다고 하는데, 고리짝(나무로 만든 상자)을 만드는 들판이라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대신리는 사하면 대치리와 부촌리를 합한 곳인데, 일제시대 때는 대신정으로 불린 곳이고 해방 후에는 대신동이

된 곳입니다. 이 대신리가 동서로 나뉘어 동대신정, 서대신정이 되었고 광복 후에, 동대신동과 서대신동이 되었답니다.

 

동산리 마을은 동대신동 동쪽 산기슭에 있어서 동산리라했고, 북산리 마을은 동대신동 북쪽 산기슭에 있어서 북산리라

 불렀습니다.

 

 닥밭골 마을이나 대신리 마을을 제외하고 다른 마을은 전부 산기슭에 있는데, 한새벌이라 불릴 정도로 넓고 음용수로

 유용한 보수천이 있는 평평한 땅을 두고 그런 곳에 마을이 있었는지 유추해보면 아마도 보수천을 타고 왜구들이

 침략할 경우 산 속으로 바로 도망칠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실제, 대신리 마을이 근대에 형성된 마을이니 대신동 일대에 존재했던 오래된 모든 마을은 전부 산기슭에 있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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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벚꽃의 대표적 명소인 삼익 아파트 & 꽃마을 거리 ...

빗물과 함께 떨어진 벚꽃잎을 밟으며, 우리들의 봄날이 가고 있네요~* ^3^

 

2015년 우리 부부 15번째 트레킹은...

부산 대신동 삼익 아파트 & 꽃마을 산책 였습니다~*